쌍방울

일풍신 이언담

다정도병 2009. 10. 19. 15:05

 

 

어릴적 외할아버지께 들었던 고전(古典)중에

一風神 二言談(일풍신이언담)이 기억난다.

사람은 첫째 풍기는 체취(體臭)가 중요하고

들째는 걸맞는 言辯(언변)이 따라야 한단다. 

 

한참뒤 대학시절

미국500대기업 C.E.O 공통점 1번이 Body Language(풍신),

2번이 Persuasive Speech(언변)라는 얘기를 듣곤

洋의 東西와 時의 古今이 따로 없음을 느꼈다.


풍신이라는 건 남에게 주는 느낌이나 면모로

잘 생긴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깎아지른 듯 조각같은 외모보다는

부드럽거나 이국적인 느낌이 못지 않게 호평을 받는다.

어떻든 외양은 임의로 안 되는 것이니

세월의 흔적임을 깨닫고 성실히 살아감이 옳겠다.


문제는 언변, 즉 말이다.

외양은 바꾸기 어렵지만

말은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다.

좋은 언변은 무엇일까.

많이 빨리 크게가 아니라

적게 천천히 작게 하더라도 ‘쓸 말’만 해야 정녕 말다운 말이다.

공자(孔子)도 논어(論語)에서

不言 言必有中(말을 안해도 하면 맞는 말만 한다)이라 했다.


요즘으로 하면 언변이란

설득력있는 말솜씨라 풀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대표적인 의사전달수단이니

이왕에 말 했으면 남한테 가서 닿아야 한다.

시쳇말로 먹혀야한다.

마땅히 간결하고 분명하며 부드러워야 한다.


두서없이 복잡하거나 범위가 막연해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야구감독의 무조건 이기라는 지시나

조건없이 이익내라는 사장의 말은 공염불이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하라는 엄마의 말도

의미없는 잔소리이긴 마찬가지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이가 거북하도록 말하면 잘못 쏜 화살이다.

 정중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말은

 물건을 싼 예쁜 포장지와 같다.

 꾸짖을 때도 유머를 버무리면

 말은 말대로 살고 사람도 잃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말에도 브랜드(Brand)가 있다. 

말하는 사람의 이름 석자가 곧 브랜드다.

이름을 걸고 말하라. 

함부로 말 할 수 있겠는가.


말의 격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다.

하기 좋은 말은 누구나 하지 않는가.

먹기 좋도록 요리하듯이

듣기 좋도록 말에 향기와 사람내음을 담아 보자.


결코 꾸짖지 말라.

알아 듣도록 하는 방법이 꾸짖음밖엔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잘 보살피지 못했음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상사라야

차후라도 일을 해낼 수 있다.

 

연못에 돌 던질 때 나는 소리로

연못의 깊이를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말로 그의 마음의 깊이를,

품격을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