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편지307-1 천자문
하이~~티넘~~!!
박인비 선수 US오픈 우승,
메이저 대회 3연승
63년만의 세계 대기록입니다.
김인경, 유소연까지
명문 대회에 1,2,3위를 석권한
한국여성의 힘은 정녕 무엇일까요.
남아선호 풍조로
남자보다 적게 태어난 한국 여성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어도 거의 모든 가정에서
주도적으로 주변을 이끌며
더 오래 더 야무지게 세상을 살아냅니다.
이어령 선생은
한국여성 힘의 원천이
‘시어머니’ 라고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메기와 청어처럼 긴장관계가
건강한 환경을 만든다는 역설
요즘은 오히려
며느리가 메기 아닌지 모르겠지만
한국 여성은
남자가 꿈꾸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내 고향 7월은 청포도 익어가는 계절이라
이육사는 노래했는데
7월초부터 장마전선이 들어와 있군요.
빗방울 떨어지는 7월의 오후
문득 커피향이 그윽합니다.
오랜만에 보내는 화요일의 왕산 편지는
‘천자문’ 입니다.
㈜하이티넘홀딩스 대표이사
旺山 정태영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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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펄펄 나는 꾀꼬리는 쌍쌍이 노니는데
외로운 이 내 몸은 그 뉘 함께 돌아갈꼬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고구려 유리왕은 황조가(黃鳥歌)에서
함께 날아 가는 새만 봐도 외로워 했지만
공자는 짐짓 의로운 외로움을 노래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 하면 족하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당치 않은 부귀는 내게는 뜬 구름이어라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논어 술이편)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혼자인 느낌이 외로움이다.
남보다 사람과 재물이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감이 힘든 거다.
겨를 없이 바쁘면 못 느낄 것을 부질없는 생각에 외로운 거다.
견주지 않고 나를 작게 가져 가면 늘 편안하다.
흔히 고독하다고들 하는데
인간의 외로움은 환.과.고.독(鰥.寡.孤.獨)으로 구분한다.
환은 홀아비, 과는 홀어미(과부 寡婦),
고는 부모 잃은 자식(고아 孤兒), 독은 자식 없는(독거) 외로움이니
고독이라는 말은 가려 써야 한다.
눈 뜨고 자는 물고기 환어처럼
홀아비는 근심으로 밤을 지샌다고 환이라는데
왜 홀어미 아닌 홀아비만 뜬 눈인 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 무릎 꿇고 익히던 천자문(千字文)으로
여지껏 한자에 향수를 느낀다.
초등 4학년부터 국어 교과서가 국한문 병용체(倂用體)로
한자(漢字)와 친해진 행복 세대.
한자는 어렵지만 뜻 뿌리를 새기고 응용(應用)할 수 있어
서양의 라틴(Latin)어에 견준다.
한글 깨치고 구구단 떼듯이 천자문을 훑어보는 일은
나이 들어도 한 번쯤 해 볼만 하다.
옛날 왕들은 참 대단했다.
별 것 아닌 일로 죄를 삼고 ‘네 죄는 네 알렸다’ 하며
인명을 농단했다.
중국 양나라때 대학자 주흥사(周興嗣)도
죄를 면제 받는 대가로 무제(武帝)의 아들 공부를 위해
단 하루 만에 천자문을 완성한다.
서로 다른 글자 4개씩 묶어
제각각 뜻이 있는 4언고시(四言古時) 250개,
1000자로 된 천자문은 급히 만든 것 치고는
명작중의 명작이다.
하루 천자문에 주흥사 머리 하얗게 셌다고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외우던 천자문.
天地玄黃(하늘천 땅지 검을현 누루황. 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다)
宇宙洪荒(집우 집주 넓을홍 거칠황. 우주는 넓고 거칠다)으로 시작…
焉哉乎也(언재호야, 모두 어조사 도움씨)로 끝나는데
주흥사가 마지막 넉자를 맺지 못해 전전긍긍함에
잠결에 신령이 나타나 어조사 넉 자를 현시해 줬단다
믿거나 말거나…
한글전용에 스러져가는 한문을 안타까워 하며
우리 문화에 깊이 드리워진 한자를 살핀다.
배추는 백채(白菜), 상치 생채(生菜), 김치는 심채(沈菜),
동치미 동침(冬沈,겨울동 묻을침), 장난도 작난(作亂,지을작 시끄러울 난),
가난도 가난(家難)또는 간난(艱難)에서 유래됐다.
별안간은 瞥眼間(눈깜짝할 별, 눈 안, 사이 간)이요,
절도 사찰의 찰(刹)이 절로 변했다.
미국은 어메리카의 ‘메’에 액센트 있어 ‘미’국으로 소리내고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國), 일본은 쌀미(米國)로 쓴다.
아름다운 나라로 보는 한국과
쌀나라로 보는 일본을 미국인들은 알까?
잉글랜드는 잉을 ‘영’으로 쓰고 꽃뿌리영(英國),
프랑스는 불란서(佛蘭西)다.
원두막에 참외 없다고
성지 예루살렘엔 기독교 아닌 유대교 자리 잡고
불교 발상지 인도엔 힌두교가 대종이다.
중국도 한자를 떼고 허물어 간자 약자체로 바꿔 내는데
한국은 정통 한자를 제대로 쓴다.
말레이지아 고어(古語) 연구도 한국인 강경석교수가 태두다.
천지현황 삼년독 언재호야 하시독
(天地玄黃 三年讀 焉哉乎也 何時讀)
허구헌 날 삼년을 앞 대가리 천지현황만 읊으니
끄트머리 언재호야는 언제나 읽으랴.
30년전은 기억해도 30분전 기억 못 하는 ‘나이든 세대’ 일 수록
하루 넉 자나 여덟 자씩 천자문 익히며
그 안에 담긴 은은한 생각들을 새겨 가면
치매도 안 걸리고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