旺山기행

2006.02 태백

다정도병 2006. 8. 24. 10:29

 

태백산 산행

 

2006년23일 금요일. 산행을 떠나기도 전에 으스스한게 웬지 심상치 않다.

서울이 영하 14도란다. 태백은 어떨까?

동해 기상대 예보 태백산 예상 최저기온이 20. 아이쿠.

서국장에 부탁했다.

왕산이 그랬다고 하지 말고 어른들께 잘 얘기해서 안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보라.

동병상련 서국장 답신, 시원하니 더 좋겠다고들 하신단다. 못말리는 청춘들이시여.

 

하릴없이 중무장하고 청량리역 시계탑에 당도한다.

오후 5 등산위원장 여송내외분,등산 총무 지단을 비롯

남정,호경,남중,일직,왕산,서국장등 9 1진 출발.

승제,소헌,동강,성파,벽옥 5인은 10 열차로 2진 출발, 새벽3에 합류한다.

 

단란열차안에서 자유와 일탈, 파격과 해학을 안주삼아 1.8리터 한병을 간단히 처리한 1진은

식당겸 숙소인 ‘정다운 서울집’에 당도한 뒤 반주와 담소로 작은 놈 5병을 더 비우고

위원장님의 엄명에 따라 일제 소등, 별빛 하늘에 돌 던지고 잠을 부른다.

 

코파와 비코파가 한데 어우러진 혼숙은 양심적 가해자인 코파한테도 여간 고통스런게 아니다.

남이 먼저 잠들고 엔진가동을 해야 마음놓고 잠을 잘텐데 만만치 않다.

먼저 잠들지 않으려 2진 동강,성파에 문자메세지로 장난을 건다.

아뿔싸,작전실패.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나 보다.

일제 공습이 시작됐다.

새벽 1 1진 모두의 전화벨이 번갈아 요란스레 울린다.

의리없이 어찌 잠을 자느냐! 같은 조건에서 산행을 해야 로타리정신이란다.

 

새벽 3에 당도한 일행과 황태해장국 얼른 한 그릇.

문밖에 나가보니 새벽공기 상큼. 현재기온 영하17.7, 최저 19도예상, 태백산 23도란다.

단단히들 꾸리고 버스이동, 30분뒤 유일사매표소. 눈이 번쩍!

대단하다. 한 마디로 인산인해. 어디서 이리들 모였을꼬.

 

가장 젊은(?) 승제께서 일행의 장비와 복장을 점검하며 매만져 주신다.

목도리와 마스크등 행여 바람구멍이라도 열릴까

자상한 손길로 추위를 미리 녹여주시는 승제에게서 새문안에의 사랑이 흠씬 묻어난다.

 

인원점검후 ‘새문안’ 구호와 함께 산행 출발! 새벽 511이다.

깜깜한 산길이지만 하얀 눈과 헤드랜턴 불빛이 맞닥뜨려 한결 운치있다.

아이젠이 살얼은 눈밭을 찌르는 소리가 사각사각 아름답다.

깜깜하지만 어둡지 않고 춥지만 차갑지 않다.

굵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이며  안고 있던 하얀 눈을 흩뿌린다.

여명이 그림처럼 소리내어 다가온다.

먼데 여인의 옷벗는 소리 들려라

영하20도라지만 견딜만하다.

시작이 반이니 벌써 성공한 셈 아닌가.

 

Every 500m, 5 minute break!  성파가 외친다.

첨병 지단,호경이 앞장서고 큰 산의 달인 소헌은 맨 후미에서 회우들 챙기며 소리없는 뒷바라지.

서로 이끌고 뒤따르며 엉키고 놓치면 ‘새문안!

곳곳에 새문안이 넘친다.

누군가가 묻는다 새문안교회에서 오셨나요?

쉬지도 마르시고 서두르지도 마르소서.

거센 바람 몰아치는 새 봄의 태백을 한 마리 독수리 하늘 가르듯 사뿐히 넘어가소서.

 

유일사매표소에서 천제단까지  4km.

그 중 2300m지점 쉼터. 사람들이 수북히 모여 있다.

일찍 오르면 정상이 너무 추워 일출시간에 맞추느라 time killing중이다.

이때 서국장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체끼 때문에 더 이상 산행불가.

의리의 사나이 성파와 함께 안타까운 중도회항, 열두명 일행은 다시 정상도전.

 

어허 이거 봐라.

갑자기 화들짝 달라진 환경이다.

칼바람이 건듯 불어 손발이 아리고 입김에 얼어붙은 목도리가 뺨을 찔러댄다.

서린 김에 얼어버린 안경은 이미 무용지물.

동트기 직전의 신비로움이 좋고 생처년 사천년 눈덮인 주목은 그 자태가 그윽하여도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살을 에는 추위는 한 마디로 역경 그 자체다.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악천후다.

도로 내려감이 어떤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 와중에 팀을 이끄는 이는 맨 후미에서 치고 올라온 소헌.

그는 일행의 절규와 아우성을 짐짓 뒤로한 채 홀로이 길을 개척한다

 

좀 쉬었다 가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소헌의 발길은 멈출 줄을 모른다.

악천후에 산행이 지체되매 행여 일출을 놓칠세라 발걸음을 도우는 것이리라.

원망스런 소헌을 속으로 뇌이며 어느 덧 산마루가 눈에 들어 온다.

승제와 남정이 탄성. 저 아래를 내려다 보라.

그랜드캐년이 여기보다 좋을손가. 절경이로고.

 

740. 정상에 올라 천제단에 모인 새문안 용사들.

소헌이 준비해온 북어대가리와 생율 사과 딸기 초코렛 과자등이 홍동백서로 젯상에 오르고

새문안 시산제, 일동 재배라.

입춘아침에 새해 소원 비는 새문안 가족들 모두 복 있을진저.

 

정상은 올랐지만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천제단에서 장군봉까지 400m는 몸이 날아갈 정도의 회오리바람.

행여 날아간 이 없는 지 장군봉에서 다시 인원점검.

 

내려오는 태백은 이미 빠르게 퍼진 햇살로 한결 포근하다.

한 번도 흙을 밟지 않은 산행.

오로지 눈길과의 데이트가 여간 행복하지 않다.

내리막 중턱에서 뜻밖에 만난 오뎅과  뜨거운 국물은 안 먹어본 자 모르리 정녕 모르리.

 

배낭에 감춰둔 소주를 여니 곧바로 얼어버려 이름하여 ‘소주 슬러쉬’ 그 맛이 캬 일품이다

휘몰아치는 바람도 쉬어가는 구름도 아랑곳 않고 크고 작은 산과 골짜기,

눈과 주목으로 아우러진 신이 빚은 대자연을 음미하며

오직 나만의 페이스로 풍광을 음미하시는 승제를 마지막으로

온 식구가 종착지 당골에 당도하며 산행 마무리하는 듯.

 

이게 웬일인가요. 서국장을 후송한 성파가 다시 홀로 태백을 넘어 내려온다

로타리안의 진수를 몸소 실천해 보인 성파 그를 위해 일행은 기립박수를 선사했다.

 

돌아오는 열차안은 새문안 특별칸인듯.

수차례 주연을 베플며 한겨울 한기를 훈훈히 녹인다.

날은 저물었지만 돌아온 청량리 또한 저녁 정취가 상서로워 그냥 헤어질 수 있으랴.

도가니탕에 마무리 소잡기로 아쉬움을 마셨다.

몸은 지치고 다리는 휘청여도 해냈다는 개운함이 뿌듯했던 정겨운 무박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