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티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와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사안을 놓고도 다를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연타석 3진 아웃 당하는 타자들을 보고
어떻게 참~~ 혀를 차기도 합니다.
잠시 후 류현진 선수가 13승 마운드에 오르겠지만
투수와 포수간 거리 60피트 6인치(18.44m)를
시속 150km(초속 41.7m)로 던집니다.
18.44m를 41.7m로 나누면 0.44초
투수 손에서 공 떠남과 동시에 스윙 하다시피 해야
일단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이 똑바로 안 오고
오다가 뚝 떨어지거나 좌우로 흐르고 맙니다.
제대로 치는 게 이상할 정도이지요.
명 투수도 때로는 크고 작은 안타를 연이어 맞습니다.
투구 난조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전 세계 공 잘 친다는 귀재들 다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안 맞을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지난 주 왕산 편지 ‘창과 방패’ 에서도 얘기했지만
좋은 창도 가끔은 방패에 막히고
좋은 방패도 종종 창에 뚫립니다.
그럼에도 일을 도모
하는 사람은
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는
나 아닌 ‘느끼는 사람’ 의 몫이니까요.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저를 꼭 닮은 딸 아이가 결혼을 합니다.
감성 넘치는 착한 신랑과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아빠가 그 날 울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오늘 화요일의 왕산 편지는
‘충성교회’ 입니다.
㈜하이티넘홀딩스 대표이사
旺山 정태영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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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교회
482번.
삼각산 도선사 우리 어머니 신도번호다.
지금 20만명 대찰이니 꽤 고참신도다.
우이동 종점서 1시간반 깊은 계곡 오르면
애들은 눈 없는 줄 아는지 엄마들 개울가에서 목욕하던 시절.
1964년 열살.
아버지 병환에 석불부처님에 3천배 철야기도를 했다.
반바지 검정스타킹 구멍 나고
청담 스님은 어린 나를 부처라 부르셨고
아버지는 쾌차하셨다.
수채구멍 버려진 밥알 주워 드시고
주로 생식으로 일관하신 청담은 조계종 종정이 된다.
1975년
그녀는 스케치북을 갖고 다녔다.
감흥이 일면 빠른 스케치에 짧은 시도 붙였다.
인생길 쌍두마차 옆자리는 늘 주님꺼라며 같이 가잔다.
주님께 자리 뺏기고 어디 있으란 말인지…
행정병 가려고 차트사 자격증 딴 나는
종로구 도렴동 종교교회 주보 한 면을 펜 글씨로 썼다.
부처 소리까지 들었기에
여자 때문에 교회는 가도 예배는 참석 안 했다.
1976년초
일선부대 배치된 나는
일요일마다 대공초소 연탄배달 사역을 했다.
산 꼭데기 초소까지 연탄을 세 번 날라야 밥을 얻어 먹었다.
한 가지 열외가 충성교회 군인 예배 참석하는 것.
불교신자인 내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나는 조심스레 현실과 타협(?)을 한다.
첫 예배는 중령 군목님의 감동의 언어였다.
찬송가 재미있고 가끔씩 위문단의 과자와 떡
그리고 여성 치맛자락과 분 냄새가 좋았다.
동기생 전창근 일병은 나를 줏대 없다 비난하며
연탄사역을 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어느 사진작가가 눈길에 말을 달리다
하늘의 음성으로 땅을 내려보며 찍은 흑백사진인데
예수님 얼굴이란다.
보이는 사람 손들라.
담박에 알아 맞춘 나는 ‘우수 신자’로 자리매김하며
전역 때는 장교부인회에서 환송 예배까지 열어 줬다.
오호 배은망덕이라.
이후 교회는 까맣게 잊고
주님보다 눈앞에 주(酒)를 섬기던 왕산.
어느 날,
일찍이 한 화류계(?) 하던 직장선배 이원일 사장이
너처럼 죄 많은 사람이 성당 안 가고
죄 없는 아내만 다니게 해서야 되겠느냐.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반듯한 왕산, 돌이켜 정녕 잘못이 없거늘
다시 돌이키니 온통 허물투성이라.
딱딱하지 않은 첫 만남
이냐시오 신부 넉넉한 아랫배에 반해 성당에 나갔고
나를 이끈 이원일 선배는 나의 대부님이시다.
예비신자시절 구역모임 하비에르 주임신부는
내가 가져간 이태리 와인에 반해
당장 세례 주겠다고 뻥을 치신다.
술이 허락된다 하여 안심(?)하고 시작한 천주교.
말씀독서도 해 보고 형제모임도 하지만
언젠가 성가대에 함께 하고픈 욕심이다.
아들 며느리 함께 성당 다니시며 기뻐하시던 아버지는
연초 하늘나라에 가셨고 어머니도 성당이 큰 안식처다.
절은 절이요 교회는 교회 성당은 성당이다.
아직도 절에 가면 정중히 엎드려 삼배한다.
교회에선 목사님 말씀 경청하고
좋은 찬양에는 큰 소리로 함께 한다.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좋기에(上善若水 상선약수)
늘 변화하고 싶다.
논어림의 박재희교수가 내게 준 아호는 불기다.
군자 불기(君子 不器)라는 공자 말씀대로
한 모양의 그릇이 되지 않아야 한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싶다.
연탄 안 날라도 되면 지금도 교회에 간다.
그냥도 가는데 뭐.
군대기간 소원해진 스케치북 그녀는
추억의 서랍에 닫아 두고
나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쌍두마차 옆자리에 태워 준 여자랑
딸 아들 낳고 33년째 살고 있다.
우리 대부님 눈에 죄 없는 나의 아내는
언제나 아쉬운 남편을 위해 오늘도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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