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글 1994.05. KRC news 기고
괜한이야기
잘생긴 준형은 곧잘 미팅에 나가는 눈치다.
여직원들이 붙여준 달덩이 별명대로 허여멀건 얼굴에 멀쩡한 허우대는,
능숙한 기타솜씨와 박진감있는 노래로 포장되고 깨끗한 매너로 전달되어
많은 여성들을 현혹시키는 것 같다.
임자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며 미팅시켜주겠다고 접근하는 뭇여성들로 늘 풍요로운 그는
언제나 궁핍한 권모 대리 등 무능력자들에게 불우이웃돕기 자선을 베푼다.
결과는 언제나 불문가지이지만.
하지만 준형은 나쁜사람이다.
그리도 풍요롭고 여유있는 그가 내게는 전혀 무관심이다.
이왕 승산없는 권모, 조모 대리 등에 시간낭비하느니 내게나 생활의 윤기를 달라고
몇 번을 청했거늘 돈으로 흔들어야 될거라며 외면하기 일쑤다.
그런데 강준은 더 나쁜 사람이다.
내 풍만한 인격(?)을 걸어 모욕한다.
인격수양이 그리 쉬운게 아닌 줄 그가 모를 리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어릴적 우리엄마 ‘사돈’집 딸넴이인
국민학교 동창생을 시내버스속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고2의 원숙한 숙녀로 변신한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서 비로소 문학소년이 되었고
급기야는 남몰래 그녀의 창밖을
현제명님의 ‘그집앞’의 대가(?)가 된 첫사랑의 추억은
이루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올리브 열매처럼 그윽하다.
문예와 음악과 미술 등 내가 갖지 못한 갖가지 달란트와
특유의 남성길들이기 테크닉으로 나를 꼼짝 못하게 했던 재기발랄한 두번째(?)여인과의 만남은 나의 군생활 전반기를 기름지게 했었다.
그녀가 주2회씩 보내오는 open된 엽서에 깨알 같은 운율들은
나 아닌 내무반 사람들의 기다림으로 진전되고
나는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한 몸에 받기도 했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초상화를 선물한다며
작은 거울을 내밀던 어떤 소녀도,
내 눈처럼 생긴 돌이 있다며 모두 주워서 책상머리에 놓고
날 보듯 하겠다던 동그란 눈의 귀여운 공격도,
언제나 베스트 9의 야구타순을 이룰 수 있도록
동수 이상의 아낙을 확보(?)했었던 화려한 나날들을 뒤로 하고,
이제 인격(?)이 풍만한 중년이 되어버린 나의 오늘은
나를 처음이라 주장하는 아내와 그녀를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나,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첫 사랑일수 밖에 없는 두 아이로 하여 늘 기쁘다.
옛날이야기
7년여 전 렌탈사업본부 발령.
달가울 리 없었지만 인사명령은 역시 다른 대안을 허락치 않았고
나의 렌탈생활은 시작된다.
후선업무가 맡겨졌다.
일체의 장부조직이 없어 보였다.
몇 달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발생전표는 8장,
보조부라곤 단지 현금출납장 하나다.
업무흐름도 만들고 사람뽑고
집기사고 전표쓰고 장부조직하고 결산하고,
기사쓰고 광고내고 설문조사하고,
담당자 바뀔 때마다 세무서 찾아가서 부가세 환급받고,
연체독촉에 잡상인 퇴치까지 내 몫이다.
영업하는 이들은 더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당시 렌탈사람들은 낮밤이 없었다.
두아이 아빠인
매일 자정넘어 일하다시피 했다.
천연 에어컨으로 후덥진 여름은
늦은 저녁 군만두 한 그릇에도 우리는 남진이가 선사하는 쌈박한 위트가 늘 즐거웠다.
파일박스 키를 안에 넣고 잠그는 특기는 단연 수은의 몫이다.
그는 까무잡잡 둥그런 눈의 미스 최와 마주 앉아 그리도 싸웠다.
스물여섯평 공간이 좁고 격층제 one-room mansion.으로
화장고치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수천평되는 신중국민학교는 우리들의 뒷뜰이다.
면접 때 관등성명을 군대식으로 외치는 통에 모두를 놀래킨 바풀때기 량복과
대한민국 병두는 유난히도 공을 잘 찼다.
늘 큰소리로 일관한 호랑이 눈썹 재범, 사람좋은 희복,
예나 지금이나 독종인 순철, 새침떼기 세진, 고집통이 혜숙,
정량 두그릇의 현정, 진순, 금미, 춘희…
에스키모인은 이글루가,
몽고인에겐 파라오가 그들의 천국이듯이
자그마한 빨간 벽돌집 범진빌딩은
당시 렌탈사람들에겐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옛날은 언제나 그리운 것,
경쟁이 전혀 없던 시절,
그저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예감과
또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는 당시 렌탈사람들의 마음들은 분명 하나였고
적은 식구들이기에 언제나 정겨웠다.
자매집 김치찌개, 전원식당 제육볶음, 하비비 치킨, 다섯평 회의실의 삼겹살 파티는
지금껏 가슴 따뜻한 우리들의 추억이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주도의 평화시대에 미국인들은 더욱 콧대가 높다.
그들은 자기들을 일등국민으로 자부한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전통적 강국임을 자부하고
파리에선 불어를 쓰라는 프랑스인들의 자존심도 이등은 아니다.
경제대국 일본 또한 내심 내노라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있다.
반만년 전통의 우리는 어떤가 생각해 볼 일이다.
- 자존심과 방패
자존심은 마치 방패와도 같아서
너무 크거나 무거우면 제 눈을 가리거나 스스로 주체치 못해 적의 공격을 헤아리지 못하고,
너무 작으면 역부족으로 공격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자존심이 지나치면 오만방자 등으로 손가락질 대상이요,
모자라면 우습게 보이기 일쑤다.
- 자존심의 비례생산성
스스로 중히 여기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면
그에 걸맞는 노력으로 ‘중한 나’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상대방도 그리 여긴다.
그래서 자존심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자신을 중히 여기고 보다 나은 나, 보다 의미있는 나를 만들어 놓았을 때
몸값(?)은 오르고 자존심의 基準高席 또한 올라가서 보다 한껏 도도함을 누릴 수 있다.
자존심과 노력의 상관계수는 언제나 正의 관계이며 相乘的 效果 를 유발한다.
- 자존심의 표현 디자인
누구나 자존심을 있다.
그러나 거울 앞에 홀로하는 자존심보다는 남이 함께 느껴야 한다.
자존심이라는 상품은 디자인되어 표현되어야 한다.
공간적으로 은은하고 은밀하게
시간적으로는 매우 완만해야 한다.
40 이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이루어 놓은 자신감은 늘 신선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표출하려는 노력보다는
차고 넘쳐 새어나오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갖춘 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최선의 디자인이다.